나쁜 남자가 끝났다. 예상 또는 우려와 그리 다르지 않게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이형민 감독의 작품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에 나쁜 남자 밖에 보지 않아서 섣불리 말하기가
그렇지만... 사실 나쁜 남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분위기가 많이 비슷했다.
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무척 좋아했다. 방영 기간 중 푹 빠져서 보았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는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하며 그 분위기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시 그 드라마를 본 적은 없다.
이제 5-6년이 흘렀고
나쁜 남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기대가 높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회의적인 시선을
많이 느껴서였을까.
그 드라마를 보게된 이유는 김재욱을 보기위해서가 반 이상이었다.
김남길은 매력있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지만 그 이상은 아니고
김재욱에 대해서는 팬은 아니지만 남같지 않은 상당한 애정이 있으니..ㅎㅎ
그리고 드라마는 적어도 비주얼이 무척 훌륭하고 음악도 신경쓴 티가 역력했다.
배우들도 상당히 훌륭해 보였다.
특히 김재욱의 진일보한 연기가 매우 흐뭇했고 캐릭터도 적역을 맡은 것 같았다.
오연수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모네를 맡은 정소민은 성형미인이 넘쳐나는 요즘 보기드문 신선한 매력을 발산했다.
신여사를 맡은 김혜옥씨는, 젊었을때부터 조금씩 내비치던 포스를 과감히 드러내며
적역을 맡았음을 증명했고
한가인은 정말 예쁘고 천사같은 모습을 보였으며
비서실장 역의 주진모씨도 뭔가 이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1, 2회 때의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연수, 김혜옥씨 정도인 것 같다.
나머지는 거듭되는 반전 속에 설득력을 잃으며 추락한 느낌.
처음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 부족으로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이 철저하게 봉쇄되었던 건데
몇번의 반전으로 인해 다른 많은 인물들도 그런 처지에 놓였다.
김혜옥씨도 사실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지진 않았으니
이 드라마에서 제일 덕본건.. 아니 손해를 덜본건 요연수 정도.
제일 아쉬웠던 사람은 당연히 주인공인 김남길.
그는 훌륭한 기럭지와 비율, 감정 표현이 뛰어난 눈, 훌륭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지만
공감이 안되는 극본을 시청자들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게 하기는 어려웠다.
이형민 감독의 과거 작품인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비교해서 내가 흥미를 가졌던 점은 두 가지다.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와 입양, 주인공의 시련, 비극적 결말 등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두 드라마 모두 엄마가 상당히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였다.
미사에서 이혜영은 강한 카리스마가 있는 여배우로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아들 무혁을 버렸고
대신 입양한 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는다.
그리고 친아들이 혼자 복수를 계획하고, 시행하고, 처절하게 망가지는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철저히 그런 아픔에서 보호받고 살아남는다.
그런 그에게 무혁이가 원했던 건 그저 라면 한그릇..
미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무혁이가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그 유명한 긴 손가락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장면이다 ㅠㅠㅠㅠ
(그때 소지섭은 내 기억에는 참 아름다웠는데.. 차무혁 이상의, 아니 그에 비견할만한 캐릭터는
과연 언제나 나올지..;;)
나남에서 김혜옥 역시, 이 드라마속 모든 이들의 불행을 야기시킨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치는 엄마다.
초기에 이 드라마에서 의외였던 게
김재욱이 분한 홍태성이, 자기 친 엄마도 아니고 전혀 잘해준 적도 없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들은 대부분 김혜옥과 관련된 장면들이었던 것 같다.
태성이와의 갈등, 문재인과의 갈등, 심건욱과의 갈등,
그리고 어제 마지막회에서 독방에서 "무소유"를 읽는 것 같은 그런 장면들ㅎㅎㅎㅎ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물론 그녀가 왜 그렇게 까지 사악했어야했는지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마 정신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던듯.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불쌍한,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놀아난 꼭두각시들이었을 뿐.
그리고 이혜영처럼 그녀도 감옥에서 길지않은 시간을 보낸 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제자리로 복귀한다.
미사의 라면과 비교되는게 나남에서는 '집밥'이다.
사실 나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닥본사하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쓴다는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보기는 했으니까.. 하여간 집밥은 여기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여러번 등장했다. 처음에 건욱이 재인에게 집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재인이 밥을 차려주지만
재인은 홍태성의 전화를 받고 떠나고.. 건욱이 혼자 밥을 먹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미사의 라면먹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건욱에게 재인이 싸준 도시락 (사실 이 부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건욱이 떠난 것을 모르고 재인이 차린 밥상..
밥은 사실 가장 원초적인 거니까.. 이건 슬프긴 하다. 나만 그런가..
그리고 이건 글의 주제와는 별 관련이 없지만
마왕의 팬으로서, 마왕이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감독이나 작가가 마왕을 보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복수극이고 비극적인 내용이니
참고를 한건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게 효과적으로 이용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가가 중간에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라마에서 작가의 역량은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한 작품이다.
아참, 형사 아저씨는 사극에서 인상깊은 조연으로 몇번 본 분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역시 이 분도 그리 효과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형사들이 이렇게 한가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던..ㅎㅎ 근데 이분도 마왕에서 김규철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분의 마스크는 사극분장이 더 잘 어울린다는걸 알게되었다.
끝으로, 어제 마지막 회에서
나는 한가인이 게시판 앞에 앉아있는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배우의 팬도 아니고 감독의 팬도 아니고 큰 불만도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데 그냥 그 장면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걸...
그냥 게시판 앞에서 게시물이 바람에 날리면서
재인의 표정이 뭔지모를 두려움과 슬픔으로 흔들리는 장면이 괜찮았다.
끝으로 이 드라마를 힘들게 찍은 배우들, 스탭들 그리고 드라마를 시청하며 마음을 졸인
배우 팬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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