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동 감독 스크린 298호 인터뷰 (펌)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민규동 감독
일부분만..... ㄳ
'꽃미남 네 명과 케이크'라는 설정이다 보니 <앤티크>가 '샤방한'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밝음보단 어둠이 살짝 앞서더라. 진혁(주지훈)이 가위에 눌리는 신이나 어린 시절 거울 앞에서 비밀을 봉인하는 장면등이 원작의 질감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밝음과 어둠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 진혁이 비밀을 안고 힘들어하는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었고. 진혁은 혼자 있는 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강렬한 이미지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작품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음울하다. 행복한 장면조차 선명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장막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웃음) 나 자신의 반영일 거다. 내가 조금 우울해 보이지 않나.(웃음)
보통 현재보다 회상 신이 더 뿌옇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오히려 회상 신이 더 선명하더라.
그게 내 마음 속 풍경이다. 평소 꿈을 많이 꾼다. 꾸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오늘도 어젯밤 꿈의 한 조각에 매달려 있다. 내 소원이 꿈을 안 꾸는 거다. 그래서 처음엔 아예 회상 장면을 없앨까 고민도 했다.
사실 <내 생에>는 현실적인 척 하는 판타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너무 착한 영화지 않나. 반면 <앤티크>는 판타지인 척하지만 꽤 현실적인 이야기다. 인물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나는 인생이 슬프다고 생각한다. 유한하니까.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낙천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결국 나에게 들려주고 싶어서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과 구원을 얘기하지만 나만 거기서 소외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에조차 행복해지고 싶어서 무리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거다.
진혁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만다. 그건 어떤 의도였나.
사실 모두가 안다. 해결책은 늘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실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진혁에게 그 열쇠를 그렇게 쉽게 쥐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일련의 사건이 해결되고 나니 진혁의 발걸음이 가벼워져 있지 않던가. 이젠 그도 케이크의 참맛을 느껴볼 수 있을 거다. 이 정도만 해도 삶에 대한 굉장한 최면이라 생각했다.
넷 중 가장 흥미로은 인물은 어눌한 보디가드 수영(최지호)이었다. 가장 멍청해 보이지만 가장 강한 인물 아닌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페이스를 지킨다. 특히 떠날 때를 안다는 점에서 '인생의 고수' 같은 면이 느껴졌다.
맞다. 그가 가장 어른스러운 캐릭터다. 자기 욕구에 충실해서 애처럼 보이는 거지. 촬영 중에 최지호가 "감독님, 저 저능아예요? 바보인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다.(웃음) "너 바보 아니야. 영화 마지막에 단 한 순간으로 증명할 수 있어"라고 안심시켰다. "사람들의 욕구가 충돌해도 너는 절대 네 욕구를 잃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네 인물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과 호흡이 놀라웠다. 불협화음 속에서 오페라를 펼쳐내는 느낌이랄까. 감독의 치밀한 계산인가. 아니면 배우들의 애드립인가?
첫 작품부터 의도치 않게 '앙상블 드라마'였다. 그땐 다섯 명의 주인공을 40명의 주변인물 앞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로 머리를 싸맸다. 나에겐 인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이 있다. <앤티크>는 공간마저 제한되어 있어서 장면의 입체감과 리듬감을 살리는게 관건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공간을 넓게 잡았나?
사람들이 썰렁하다고 그렇게 찍지 말라고 했지만 화변을 넓게 찍으려고 애썼다. 그래야 레이어(layer)가 생겨서, 인물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인물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단 한 순간도 쉬고 있으면 안됐다. 주지훈이 어려움을 호소한 부분도 이거다. 예를 들면 기범(유아인)이 2분동안 권투선수와 실랑이를 하는 신에서, 주지훈에게 대사를 주지 않고 알아서 리액션을 해보라고 했다. 무척 난감해하더라. 사전 리딩을 수없이 했다. "너무 무뎌지는 거 아니에요?"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네명이 치고 받는데 틈이 생기려고 하면, 누구든 기다렸다는 듯 툭 치고 들어가더라.
신인 배우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 신인이 아니었다면 2~3개월 동안 그렇게 함께 지내지 못했을 거다. <내 생애> 때는 전체 리딩을 한 번도 못했다. 크랭크인 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황정민을 처음 만났을 정도니까.
주지훈은 테크닉적으로 훈련된 배우는 아니지만, 날렵한 감각이 있는 것 같더라.
욕심이 엄청 많은 친구다. 내면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끄집어낼 게 많다. 그에 비하면 김재욱은 타고난 끼가 많은 친구다. 주지훈은 질문이 많다.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패닉 상태에 빠지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공황에 빠져서 끊임없이 NG를 내다가 어느 순간 쑥 통과한다.
반면 유아인은 무시무시하게 노련했다.
호흡과 리듬이 이미 체득되었다. 능수능란하지. 아무리 긴 대사를 줘도 한 문장으로 느껴질 만큼 호흡이 좋다. 보통 신인들은 자기 대사 차례만 기다리다가 긴장 때문에 첫 한 마디가 깨지면 뒤에 우르르 무너지고 마는데, 유아인은 '단칼'이다. 그래서 일부러 긴 대사를 많이 줬다. 롱 테이크와 풀 쇼트에서 재능이 더 드러나는 배우다.
<내생애>를 만든 감독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케이크를 사러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을 것 같다.
러닝타임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 욕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웃음) <바그다드 카페>(88)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손님들의 드나듦을 통해 일상적인 이야기가 쌓이는 원작의 느낌이 좋았으니까.
당신은 문학적.음악적 재능도 있고 춤도 잘 춘다고 들었다.(웃음) 세상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한데, 왜 굳이 영화인가?
영화는 내게 불편하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기에 좋은 매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적절한 것은 글쓰기인 것 같다. 영화는 완전히 감독의 예술일 수밖에 없다. 감독의 리듬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보지 말라는 식이다. 러닝타임과 제작비라는 강력한 속박도 있고.
주지훈갤러리 감자도리님이 올려주신 글. 항상 감사합니다^^